엄마를 두고 외가와 친가의 사람들이 하는 말의 첫마디는 "너희 엄마는 참 '영리한' 사람이다"라는 말이다. 엄마의 자식인 우리 삼형제가 도맡아서 전교1등을 하는 정도에는 못 미치고 '공부 잘하네'라는 말을 듣는 정도이긴 했지만, 사람들은 '그건 너희 엄마들 닮은 덕분'이라고 잘라 말하곤 했다. 그리고 그 말 뒤에 '너희 아버지한테는 좀 미안한한 얘기이지만'.이라고 말을 붙였다. 어떤 여성학책에서'아까운 여자가 너무 많다는 건 그 사회가 여자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라는 뜻이다.'라는 귀절을 읽었다. 우리 어머니의 경우도 이에 해당되었기에 지금도 그 귀절이 기억 난다.
엄마가 거의 말씀을 안하고 누워만 지내시던 6월, 문병온 큰이모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외할아버지 상가에 엄마의 담임선생님이 왔더라는 말이 나왔다. 그분은 지금은 교장이 된 세째 외삼촌의 담임으로서, 학부모 문상을 오셨던 것이다. 세째외삼촌이 엄마의 동생인줄 모르셨던 담임선생님이 깜짝 놀라더라는 이야기.
그 당시 외가 마을은 딸들은 일체 학교를 보내지 않는 분위기였지만, 외할아버지께서는 '딸들도 편지정도는 읽을 줄 알아야 한다'라고 하시면서 딸들들 차례차례 학교에 보내셨다고 한다. 맏딸인 엄마가 처음으로 학교를 다니게 되었나 본데, 담임선생님이 보기에 엄마는 보기 드믈 정도로 뛰어난 학생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집안형편상자매들이 동시에 학교에 다닐 수는 없으니 엄마는 2,3년 다닌 학교를 그만 두게 되었다. 그런데 그후 오랫동안, 여러번, 엄마를 아까워 했던 담임선생님이 찾아와 외할아버지께 청을 하러 오셨단다.
"아이를 학교에 다시 보내주십시오."
"아니오, 집안일이 많아 안됩니다."
"너무나 영특한 아이입니다. 아이를 보내만 주신다면, 제가 집안일을 할 식모를 대겠습니다."
"그래도 안됩니다."
아, 참, 어머니를 유난히 아끼셨다는 외할아버지는 왜 안된다고 했을까.
네명의 아들들중 두명은 고등학교도 보내고 대학교도 갔는데...
어머니를 이 아들만큼만 후원했다면
학교만이라도 다니게 해주었다면
훗날 수리조합이 부도가 나면서 주저앉게 된 집안의 든든한 기둥이 되었을 텐데.
엄마와 1,2등을 다투던 남학생은 나중에 교수가 되었다던가...
그렇게만 되었다면 엄마는 세째외삼촌처럼 교장이 되거나 1등을 다투던 남학생처럼 교수가 되지 않았을까?
영리함만을 보면 되고도 남았겠다 싶다.
엄마는 사람들이랑 잡담하는 시간이 아깝다고 했다.
낮잠도 아깝다고 했다.
그리고 시간이 나면 신문 한 쪽이라도 글을 읽으셨다.
시장에서 고생하며 어렵게 번 돈 이지만,
우리에게 책을 사주실 땐 아낌이 없었다.
흑석동 시장에 있는 서점아저씨가 우리엄마처럼 이렇게 아낌없이 책을 사주는 사람은 없다고 했었다.
엄마의 영리함과 성실함과 비교하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다.
사실 지금보 다 더 잘되었어야 할터인데.
엄마에게 여러번 들었던 일화이지만 이모에게 더 자세히 듣고 나니 아쉬웠다.
시대의 한계에 갇히기 된...
그리고 그렇게나 영리했던 분의 딸이니
어쩌면 나도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영리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하고자 하는 의지가 머리의 좋고 나쁨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생각한다면
못할거야...라는 생각을 걷어버리고 그냥 하면 될 것 같다.
그렇게 해서 '뛰어나게 영리'했던 '아까운 여자'인 우리엄마의 안타까움을 덜어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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